코딩 몰라도 앱 만들기 | 건설현장 통역앱 개발기

"데스리 없는 데는 올라가지 마세요."
현장에서 이 말을 번역기에 넣으면 이렇게 나갑니다. "책상이 없는 곳에는 올라가지 마세요."
안전난간이 없으니 올라가지 말라는 경고가, 책상 이야기가 되어 상대에게 도착합니다. 저는 코딩을 배운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. 그런데 이 문제를 고치는 앱을 이틀 만에 만들었습니다.
이 글은 그 이틀의 기록입니다. 무엇이 막혔고 어떻게 넘었는지, 그리고 코딩 대신 무엇이 필요했는지를 적었습니다. 따라 하실 수 있게 쓰겠습니다.
왜 하필 통역앱이었나?
숫자부터 보겠습니다.
| 외국인 건설근로자 (2024년) | 22만 9,541명 |
| 전체 건설근로자 중 비중 | 14.7% |
| 출신 1위 | 한국계 중국인 83.7% |
| 그다음 | 중국 5.9% · 베트남 2.2% · 고려인 1.7% · 우즈베키스탄 1.6% |
건설업계가 외국인 근로자 산재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 것이 '의사소통 능력 부족' 입니다. 한국어 중심 안전교육을 못 알아들으면 그대로 위험이 됩니다.
※ 외국인 비중은 자료마다 14.7%에서 20%까지 다르게 적혀 있습니다. 집계 기준(하루라도 일한 사람 / 상시 인원)이 달라서로 보이지만, 어느 쪽이 맞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.
문제는 번역기가 있다는 게 아니라, 번역기가 현장 말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. 그래서 만들기로 했습니다.
코딩을 모르는데 어떻게 시작하나?
'바이브 코딩(Vibe Coding)'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. 코드를 한 줄도 직접 쓰지 않고, AI에게 말로 설명해서 앱을 만드는 방식입니다.
2025년 초 오픈AI 공동창업자 출신 연구자 안드레이 카파시가 *"코드의 존재조차 잊고 분위기(vibe)에 몸을 맡긴다"* 고 표현하면서 이름이 붙었습니다. 2026년 지금은 비개발자가 업무 도구를 직접 만드는 표준적인 방법이 됐습니다.
제가 한 일도 그것입니다. 터미널에 한국어로 말을 걸었습니다.
"건설현장에서 한국인 관리자와 외국인 근로자가 마주 앉아 쓰는 통역 앱을 만들어줘. 휴대폰을 두 사람 사이에 놓고, 버튼 한 번 누르면 그다음부터는 그냥 말만 하면 되게."
그러면 파일이 만들어집니다. 저는 그것을 열어 써 보고, 안 되는 것을 말합니다. 그게 전부입니다.
⚠️ 다만 한 자료가 정확히 짚은 대목이 있습니다. "코드 문법은 몰라도 되지만, 요구사항을 논리적으로 쪼개는 능력은 필요하다." 이 글의 나머지는 전부 그 이야기입니다.
첫 번째 벽 — 번역기는 안전벨트를 자동차 벨트로 안다

만들어 놓고 말을 시켜 보니 바로 막혔습니다.
| 우리말 | 그냥 번역하면 |
|---|---|---|
| 안전벨트 | seat belt (자동차용) |
| 안전화 | safety shoes |
| 개구부 | the opening |
| TBM | TBM |
| 낙하물방지망 | lưới chống vật rơi |
"안전벨트 매세요" 가 자동차 안전띠 이야기로 나갑니다. 고소작업에서 이 말이 안 통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.
그래서 현장 용어집을 만들었습니다. 한 줄에 하나씩 `우리말 = 상대말` 로 적으면 번역할 때 그 말로 바꿔 줍니다.
- 양방향으로 적용됩니다. `안전벨트 = safety harness` 한 줄이 한→영, 영→한 양쪽에 걸립니다.
- 언어별로 따로 저장됩니다. 영어 용어집과 중국어 용어집이 안 섞입니다.
- 처음 만들 때 135개였는데, 쓰면서 계속 늘어 지금은 308개입니다. 영어·중국어·베트남어 세 벌입니다.
두 번째 벽 — 은어는 아예 못 알아듣는다
용어집을 넣어도 안 되는 것이 남았습니다. 아시바, 데나우시, 함바, 오야지 같은 현장 은어입니다.
번역기는 이런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옮겨 버립니다.
| 하신 말 | 그냥 두면 |
|---|---|---|
| 데스리 없는 데는 올라가지 마세요 | Don't go up to a place without a desk |
| 아시바 위에서 데나우시 해야 됩니다 | do denaushi on top of Ashiva |
| 함바에서 시마이하고 단도리 하세요 | Do shimai and dandori at Hamba |
| 오야지한테 공구리 타설 언제냐고 | Hỏi Oyaji khi nào gonguri |
"데스리(안전난간)"가 "desk(책상)"로 나갑니다. 도입부에 적은 그 문장입니다.
그래서 은어를 표준말로 먼저 바꾼 뒤 번역하게 했습니다. 지금 103개가 들어 있습니다.
- 화면에는 말씀하신 그대로 보입니다. 뒤에서만 바꿔서 번역합니다.
- 한국어 쪽에만 적용됩니다. 상대방 말이 은어로 번역되는 일은 없습니다.
- `노가다` 처럼 낮춰 부르는 말은 중립적인 표준어로 바꿔 통역합니다.
세 번째 벽 — 은어가 멀쩡한 말을 잡아먹었다
여기서 진짜 문제가 터졌습니다. 은어 목록을 넣었더니 평범한 말이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.
- "조심하시다가" → `시다` 가 걸려서 이상해짐
- "나가라고" → `가라` 가 걸림
- "기공식" → `기공` 이 걸림
- "나오시죠" → `나오시` 가 걸림
- "헤라클레스" → `헤라` 가 걸림
- "십장생" → `십장` 이 걸림
짧은 은어가 긴 낱말 안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. "조심하시다가"에서 "시다"를 찾아내 바꿔 버리면 문장이 통째로 망가집니다.
고친 방법은 두 가지였습니다.
- 세 글자 이상만 은어로 본다. `앙카` 는 빼고 `앙카볼트` 로 넣습니다.
- 낱말 경계를 확인한다. 앞뒤가 다른 글자에 붙어 있으면 건드리지 않습니다.
📌 이 문제를 찾은 사람은 개발자가 아니라 저였습니다. "조심하시다가"를 말해 본 사람만 압니다. 이게 이 글에서 가장 하고 싶은 말입니다.
이틀 동안 실제로 한 일은 무엇이었나?

파일이 만들어진 시각으로 되짚어 보면 이렇습니다.
| 시작 | 9월 9일 12시 36분 |
| 마지막 손질 | 9월 11일 08시 36분 |
| 걸린 시간 | 약 44시간 (잠자고 밥 먹은 시간 포함) |
| 결과물 | 앱 파일 27개 · 370KB |
| 지원 언어 | 14개 (영어·중국어·베트남어·네팔어·몽골어·우즈베크어 등) |
그 44시간 동안 제가 쓴 코드는 0줄입니다. 대신 이런 일을 했습니다.
- 말해 보고 안 되는 것을 찾았습니다. "데스리"를 넣어 보고 "책상"이 나오는 걸 봤습니다.
- 왜 안 되는지를 설명했습니다. "은어라서 번역기가 모른다"까지가 제 몫이었습니다.
-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정했습니다. 은어 몇 글자부터 잡을지, 화면에는 원문을 보여줄지.
- 현장 말을 모아 넣었습니다. 용어 308개와 은어 103개는 제가 아는 말입니다.
AI가 한 것은 코드를 쓰는 일이었고, 제가 한 것은 "무엇이 틀렸는지 아는 일"이었습니다.
※ 개발 과정을 커밋 단위로 남기지 않아서 시간대별로 무엇을 했는지는 정확히 복원하지 못했습니다. 위 시각은 파일이 마지막으로 저장된 때 기준입니다.
따라 하시려면 무엇부터 하면 되나?
제가 이틀 겪고 나서 정리한 순서입니다.
- ① 진짜 불편한 것 하나만 고르세요. 거창하면 안 끝납니다. 저는 "현장에서 말이 안 통한다" 하나였습니다.
- ② 첫 문장을 쓸 때 "누가·어디서·어떻게 쓰는지"를 함께 적으세요. 저는 *"휴대폰을 두 사람 사이에 놓고"* 를 적었습니다. 이 한 줄이 화면 모양을 전부 정했습니다.
- ③ 만들어지면 바로 써 보세요. 코드를 볼 필요 없습니다. 안 되는 것만 찾으면 됩니다.
- ④ 안 되는 것을 "왜"까지 말하세요. *"이상해요"* 보다 *"데스리가 책상으로 나와요. 현장 은어라 번역기가 모르는 것 같아요"* 가 훨씬 빨리 고쳐집니다.
- ⑤ 되돌릴 수 있게 해 두세요. 저는 이 부분을 안 해서 후회했습니다 — 개발 기록을 남기지 않아 과정을 되짚기가 어려웠습니다.
⚠️ 비용은 미리 아셔야 합니다. 앱을 웹에 올리는 것 자체는 무료로 할 수 있지만, 번역 품질을 높이려고 AI 번역을 켜면 쓴 만큼 요금이 나옵니다. 제 앱 기준으로 월 11시간 사용에 약 2,900원입니다.
다음 편에서는 제가 만든 다른 앱 이야기를 하겠습니다. 이 앱보다 훨씬 많이 헤맸던 것들입니다.
여기에 오너의 한마디를 적어 주세요. 왜 이 앱을 만들기로 했는지, 현장에서 실제로 써 보니 어땠는지 두세 줄이면 충분합니다. 이 자리가 이 글에서 가장 값어치 있는 곳입니다.
자주 묻는 질문
Q. 코딩을 정말 하나도 몰라도 되나요?
코드 문법은 몰라도 됩니다. 저는 44시간 동안 코드를 0줄 썼습니다. 다만 *"무엇이 잘못됐는지 설명하는 능력"* 은 필요합니다. "이상해요"가 아니라 "데스리가 책상으로 나오는데 현장 은어라 그런 것 같아요"라고 말할 수 있어야 빨리 고쳐집니다.
Q. 만드는 데 돈이 드나요?
도구마다 다릅니다. 무료 체험 구간이 있는 것도 있고, 본격적으로 쓰면 월 2~5만 원대 구독이 드는 것이 보통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. 만든 앱을 웹에 올리는 것은 무료로 할 수 있습니다.
Q. 얼마나 걸리나요?
이 앱은 약 44시간, 이틀이 걸렸습니다. 다만 처음부터 다 알고 시작한 게 아니라 막히고 고치기를 반복한 시간입니다. 기능이 적으면 훨씬 짧습니다.
Q. 왜 일반 번역 앱을 쓰지 않고 따로 만들었나요?
일반 번역기가 현장 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. `안전벨트`를 자동차 안전띠로, `데스리`를 책상으로 옮깁니다. 안전 지시에서 이런 오역은 그대로 위험이 됩니다. 현장 용어 308개와 은어 103개를 따로 넣은 이유입니다.
Q. 만든 앱을 다른 현장에서도 쓸 수 있나요?
용어집은 현장마다 쓰는 말이 달라 그대로 쓰기보다 다듬어 쓰시는 편이 좋습니다. 안전 용어는 오역이 곧 사고라, 실제 투입 전에 해당 언어를 쓰는 근로자에게 한 번 읽혀 보시길 권합니다.
※ 이 글의 사실 정보는 아래 보도를 확인해 정리한 것입니다. 본문 문장은 직접 썼습니다.
※ 출처 — 스마트투데이 「언어장벽 낮춰야 안전사고 줄인다…건설업계, 외국인 근로자 소통 강화」 / 오피니언뉴스 「외국인 근로자 20% 육박…건설사, AI 번역으로 안전 소통 강화」 / 뉴스저널리즘 「인력난 속 건설현장 외노자 증가세… 안전·품질 우려」 / 구글 클라우드 「바이브 코딩이란 무엇인가요?」 / 위키독스 「바이브 코딩 시작 가이드 (2026)」 / 근로복지공단 「외국인근로자 산재처리현황 (공공데이터포털)」
※ 정리 시각: 2026-09-15 04:42